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아리랑길 071 - 매물도 본문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겨울, 온게 미안해서 꽃만 피우고 떠나버린 봄,
그러고나니 여름이었다.
여름은 여름으로 가나? 싶었는데, 이것들이 클럽을 들락거리다가...,
이제 눈총 받음 없이 가고픈 곳으로 가도 되나? 싶었는데, 또 디디한 면역력이 전염에 전염을 거듭하고...,
눈치가 보여도..., 나는 간다!
난 민폐를 끼치지 않는 트레커이고, 강자에겐 면역력이 있다.
아리랑길에 등대 가는 길을 합치니 마음이 바빠졌다.
1행(行)에 3도(島)2등대 탐방이 가능한 군도를 찾았다.
속보 탐방을 한다면 당일 들고나고의 배시간도 충분히 맞출수가 있어 보였다.
간다!
토요일 오전에 비는 그친다 했고, 풍랑은 일지 않는다고 했다.
04시30분, 세수 같은 행위는 생략을 하고 200km를 달려 07시05분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광양에서 이순신대교를 건너 여수로 들어가는데, 바다에 짙은 해무가 장관이었다.
잠시 불길한 조짐도 들었지만,
새벽안개는 곧 걷힌다 그렇게 치부를 하며 계속 차를 몰았다.
터미널로 대합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찮다.
매표창구위 모니터에 표출되는 문구...,
출항은 07시40분이고 아직 30여분 희망의 시간이 존재하기에,
애써 담담한척 밖으로 나와 바다를 보는데, 이내 안내방송이 들렸다.
더 조달할 물이 떨어지니, 이번엔 안개로 지랄을 하시는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해상의 짙은 안개로 거문도방면 여객선 운항이 통제 되었습니다.
알겠다. 그만 씨부려라!
돌겠다.
꼭두새벽에 집을 나와 두시간삼십분 쉼 없이 달려 왔는데...,
안돼는 놈은 뭘 해도 안돼는구나, 싶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심정으로 차에 우두커니 앉아 정박된 거문도행 페리호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다.
화원반도 서단의 끝에 서 있는 '목포구항등대를 보고, 목포여객선터미널로 가 철부선을 타고 안좌도로 간다?
고흥반도에 딸린 연륙교가 놓여진 섬들을 차례로 탐방을 한다?
인근의 교회로 가 "내게 왜 이러시냐?"고 따진다?
실연을 당한듯한 사람들이 하나 둘 차를 몰아 터미널을 빠져 나갔지만,
난 정지화면의 모드에서 플레이 버튼마저 찾기가 싫었다.
아무리 박을 굴려봐도 뭐를 우째야될지?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다.
패장의 꼴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고...,
박지도, 반월도를 돌고 집으로 돌아 갈 때의 그 지긋지긋한 남해고속도로 전구간 달림에 목포행은 아웃,
바이러스 정국에서 관광지가 아닌 작은 섬에 들어가는 짓은 너무도 무례여서 고흥행도 아웃,
이 시발~ 당췌 이 안개 자욱한 이 아침에 어디를 가야 하노! 그것도 여수에서...,
지도를 띄웠다.
등대가 있는 섬들을 찾기 시작했다.
예전에 갔지만, 그 때는 그냥 간거였기에 등대를 못본 섬 하나를 찾았다.
소매물도 그리고 소매물도등대!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는 제법 먼 뱃길이라 행여 안개로 또 개 같은 사태를 맞을수도 있기에,
섬과 연접한 거제도 저구항은 출항을 할 것 같았다.
(난 사전 전화로 묻고 따지고 하는 지랄은 하지 않는다)
네이비에 저구항을 치니 161km가 나왔다.
11시 배를 탈려면 또 열나게 쳐달을 해야했다.
열나게 쳐달을 한 결과 10시30분, 저구항에 도착을 했다.
안개가 나를 쫒아 왔는지..., 저구항 앞바다 역시도 자욱한 해무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다행히 소매물도행 여객선은 운항이 되고 있어 승선권을 끊는데,
발매원이 말하길 "오늘 물때가 '조금'이라 등대섬은 못들어 갑니다" 한다.
아 놔! 이런 왕개시발~ 허패가 디비지는게 아니라 아예 터지는 기분이었다.
교회를 처다니며 찬양을 해줘야하나..., 싶기도 했다.
도대체, 내한테 왜 이러세요? 네??
해금도(등대섬)를 못가는 소매물도에는 갈 이유가 없어, 카드를 도로 집어 넣고 터미널을 나왔다.
나는 절대 우매하지 않는 인간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오늘 우매한 인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서 출발전 물때표를 보니 소매물도의 오늘 첫번째 간조는 10시56분이었다.
나는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간조시에는 무조건 바닷길이 들어난다고 생각을 했다.
아니더라~
만조와 간조의 차가 가장 미비한 날은 음력 8일과 23일이고, 이를 물때에서는 '조금'이라 칭한다.
오늘은 음력24일이었고, '조금'과 같은 '무시'였다.
한대 꼬라물고, 매물도로 백패킹을 떠나는 청춘들을 바라보았다.
매물도나 갈까?
그 때, 트랙온을 하지 않아 지도에 빨간선을 입히지 못한 섬...,
아리랑길 071 - 매물도 (2020.05.16)
한번 간 곳을 또 처간다. 갈 곳이 없어...,
한번 걸은 길을 또 처걷는다. 트랙이 없어...,
2018년7월7일,
해미누나는 혼자 걸은 한려해상국립공원내 바다백리길 중 으뜸이었던,
매물도와 그 섬의 둘레길인 해품길을 남해안길종주대 특별 이벤트1의 대상지로 선정하여,
매번 떼거지 산행만을 하는 인터넷산방 멤버들에게 섬, 산, 길, 바다, 바람이 든 종합선물세트를 안겼다.
최고의 섬이었고, 최고의 섬 길이었다.
해무로 가려진 바닷길을 용케 뚫은 매물도호는 11시38분 매물도항에 닿았고,
나는 하선과 동시에 트랙을 켰다.
지도고 나발이고,
한번 걸었던 길이기에 시원하게 한바퀴 돌고, 14시배로 섬을 나가기로 했다.
박배낭을 멘 청춘들은 모조리 한산초등학교 매물분교터로 갔지만,
빈배낭을 멘 나는 그 날 걷지 못한 당금마을 뒷동산에 위치한 '매물도발전소로 갔다.
한려해상바다백리길 5구간 '매물도해품길로 명명된 섬의 둘레길은 7km 정도로 추정이 되었지만,
해발210m의 장군봉을 오르내리며 모든 지형이 산인 섬이기에 13시50분까지 출발지로 돌아와질지...,
다소 걱정이 되었다.
본 풍경과의 재회,
기억한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이년이 지나고 온 객은 코수염에 그 때는 보이지 않던 흰털도 간혹 나있다.
코수염은 뽑을 때, 더럽게 아프다.
당금마을 뒷산을 돌아나오니,
국립공원내 합법적 야영이 가능한 분교터가 보였고, 같이 배를 타고 온 청춘들이 서둘러 들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때는 또래의 여자들이 다 예쁘지는 않았는데, 오새는 우째 하나 같이 다 예뿌냐...,
어떤 청춘의 커플들을 볼 때에는, 야 그 미모로 쟤랑? 돈 빌렸어?? 이런 의문마저 들었다.
(또 외모비하니 성희롱이니..., 니 혼자 오랫도록 생각하세요)
청춘들 사이에서 나 보다 더 산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그들을 보니, 그 날의 남해안길종주대 '중년야영이, 그 날의 바람이 쫌 그립더라~
10여분을 걸어보니,
지도에 보여지는 녹색선의 길이가 13시50분까지는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내 텐트들은 집에 있고, 나는 14시 배로 섬을 나가야 한다.
풍경과 기억에 젖을 때가 결코 아니다.
그 때의 이 길에서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땀이 나기 시작했고, 호흡도 거칠어졌고, 오름이 제법 힘에 붙힐 때, 흡연금지라고만 쓰여진 전망대에 닿았다.
아니 머물 수 없는 풍경이 발아래라서, 배낭을 풀었다.
거문도를 걷고 있어야 할 걸음이 생각에도 없던 매물도를 걷고 있음에,
사람일은 한치 앞을 모르는기라~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았고, 그래서인지 맥주맛도 별로였다.
마음이 조급해져 얼마 쉬지도 못하고 다시 배낭을 등짝에 붙히고 일어섰다.
남은 맥주는 매물도에게 줘 버리고...,
잠시 걷힌 안개 사이로 장군봉이 보였다.
장군봉을 경유해야만이 길은 이어지기에 거부할 수 없는 오름은 계속 되었다.
훽, 훽, 훽, 그리고 퉤...,
오름과 내림의 반복에 다소 지쳤지만,
안개로 인해 몽환적으로 보여지는 섬의 풍경들에 몽롱해지며 걷는다.
그 날 이 섬에서 본 풍경은 예고편이었고, 오늘이 본편 같다.
12시39분, 2.6km를 걸어 대항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 도착을 했다.
이제부터 해품길에서 가장 심한 오름의 구간이고, 주어진 2시간10분에서 벌써 1시간을 까 먹었다.
그 동안의 트레킹에서 가급적 오름길은 제척을 했기에,
그 동안의 트레킹에서 고달픔 대신 서성임을 누렸기에,
주어진 시간내 목표로 한 곳에 닿아야 하는 오르내림의 산길은 아주 뜨거웠다.
13시 정각,
입에 개거품을 뿜고 질질질 육수를 쏟아내며, 매물도 최고점 장군봉에 닿았다.
그 날은 말을 타고 좋다고 생지랄을 했지만, 오늘은 말에 오르는 대신 훽훽훽 퉤를 두번이나 했다.
뻗지도 못했는데..., 13시다.
50분 밖에 남지 않았고, 가야할 길은 4km가 남았다.
소매물도 북단이 보이는 매물도의 남단을 돌아 대항마을을 거쳐 당금마을로 가는 길은,
수직굴곡상 내리막과 평지가 대부분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내림길에서는 줄기차게 뛰었다.
뭔가 출렁이는 기분이어서 배낭속을 의심했지만, 배낭이 아니고 내 배였다.
모처럼 오장육부가 요동을 친다.
퇴근후, 술집에서 자리를 갖지 못하니,
집에서 술도 마시지만 저녁까지 꼬박꼬박 먹어 체중도 늘었고, 더하여 배도 점점 튀어나오는 요즘이다.
짱개발 바이러스의 병폐가 심각하다.
거문도에 못간 이유는 하느님 때문이고, 내 배 튀어나옴은 짱개 바이러스 때문이다.
내 잘못은 조금도 없다!
어제 비가 내려서인지는 몰라도 길의 곳곳에서 졸졸졸 물소리가 났다.
대항마을 직전의 길가 석축틈에서 새어나온 물줄기는 작은 개울을 만들어 놓았다.
제법 차가운 물에 얼굴과 모가지를 깨끗이 씻고,
언놈이 어디를 갔다가 돌아와 마실려고 담궈 둔 막걸리도 오픈을 해 두 모금을 빨고 다시 담궈뒀다.
이제 보이는 산모퉁이 하나만을 돌면 당금마을이고,
이년전 걷고도 갖지 못한 매물도 해품길의 트랙을 온전히 얻게 된다.
그로해서, 매물도는 내 아리랑길 40의 섬이 된다.
13시48분, 7.2km 매물도 일주 트레킹을 끝내고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10여분만 서성이면 저구항으로 나가는 배가 올테고,
앞으로의 삶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섬과의 이별 시간에 충실했다.
저구항으로 곧장 갈 줄 알아던 배는 소매물도를 들려 간다고 했다.
득분에 근10년만에 소매물도를 보겠구나? 싶었지만, 등대 때문에 언젠가 다시 갈 섬이기에 달갑지만은 않았다.
야외 객실에 앉아,
오늘 내가 걸은 매물도 서부해안을 보며 안개 썩인 바다바람을 맞고 있는데, 쉼 없는 카메라 셔터소리가 난다.
소리의 주인공은 30전,후의 여성분이었고, 일행 없이 혼자 섬을 탐방하는듯 보였다.
조심스레 말을 걸어볼까도..., 싶었지만 그녀의 완벽한 홀로 여행을 지켜주고자 참았다.
대신에,
섬, 바다, 바람, 안개가 이룬 풍경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요소가 더해져 절정이 된 풍경을 누렸다.
17시30분 집으로 돌아왔다.
주행게이지를 보니 520km를 처달렸고, 25,000원의 톨케이트비가 외상으로 끊겼다.
한심도 했고, 7km 남짓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며든 피로감에 몸이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짠 여정이지만,
그 여정이 일반적 달성치를 넘어서면, 그 성립을 방해하는 예상치 못한 것들의 나타남에 속이 상한다.
돌아오는 주말,
400km를 북상해, 하루에 4등대 탐방과 4트랙(35km) 형성을 할 것이다.
분명 또 어떤 요소들을 동원해 훼방을 할지는 몰라도...,
신은 인간이 만들었음을 증명하겠다!
그러면 비는 땅에서 하늘로 내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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