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아리랑길 070 - 백야도 본문
주중에 축적한 에너지를 토요일 모두 소진을 시키고,
일요일은 엑기스가 다 빨린 굼뱅이의 자세로 할 일 없음을 누려야 하는데...,
토요일 소진을 못한 에너지가 남아서인지, 일요일 새벽 자동으로 일어나졌다.
잘 자라~ 나는 떠난다.
아리랑길 070 - 백야도 (2020.4.26)
어제 가족들을 데리고 100km를 북상하여 호미곶을 탐방하였지만, 그건 떠남이 아니었다.
떠남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뜻한바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요즘 떠날 수 있어 산다.
올해 네번째 여수 방문이다.
여천정류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 발열체크를 한다.
09시50분, 여수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백야도로 가는 버스시간을 보니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삶에서 기다림이 제일 싫다.
그래서 밥을 먹기로 했다.
에라이~ sibal gae맛도 없다.
그 와중에 남기면 2,000원 벌금이 붙는다하여 억지로 쑤셔 넣었다.
여수종합터미널부근, 생생정보통에 나왔다는 한식뷔페는 다른 사람들 입맛에는 맞을수도 있다.
식당을 나와 십여분을 서성이니 백야도행 시내버스가 나타났다.
난폭운전으로 고돌산반도를 남하한 버스는 11시25분 백야대교를 건넜고, 나는 하차벨을 눌렀다.
몇번을 오고자 한 섬이었지만, 참 잘 안가지는 섬이었다.
오늘 백야도 옴도, 사실은 섬의 동단에 위치한 '백야도등대 탐방이 주된 목적이다.
미안~ 백야도...,
11시28분, 백야도등대를 트랙의 중심에 넣고자 시계방향 일주를 시작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보돌바다다.
이래되면, 트레킹 속도는 5km/hr를 넘기지 못한다.
길가의 모든 풍경이 그림인데, 어찌 길만을 보고서 갈 수 있겠노!
그래도 걱정은 없다.
오늘 섬을 돌고나가 오동도등대마저 탐방을 한다해도, 19시10분 부산행 버스 탑승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신안군 다음으로 많은 유인도서를 가진 여수,
탐방할 섬을 선정하고, 선정된 섬으로 가는 배편을 알아보고, 배편에 따라 여정을 짜야하는...,
생각만으로도 이제 해골이 흔들거린다.
백야항에서 개도로 떠날 채비가 한창인 차도선과 마주했다.
섬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은 배를 탔고, 섬 길이 있어 행복한 사람은 계속 걸었다.
12시03분, 백야삼거리에 도착했다.
등대기행 10 - 백야도등대 (2020.04.26)
12시41분, 백야삼거리로 돌아왔다.
쫌 고독하지만, 이제 혼자 걷는 걸음의 자유스러움으로 고독을 지운다.
쫌 갈팡질팡 하지만, 이제 지도 따위에 얽메이지 않고 가는 길의 홀가분함을 안다.
쉬어야지 쉬어야지 하면서도 끊임 없이 걷고, 좀전에 쉬었지만 또 쉰다.
멍청하게 엄한길로 들어서 낭패를 보지만, 멈춰 서 지도를 봐야하는 귀찮은 멈춤은 없다.
백야도둘레길을 치니,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의 선이 보였다.
눈으로 본 것을 뇌에 담았을 뿐이다.
이쯤에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아야하는데, 하면서도...,
계속 남하를 해 섬의 남단에 위치한 몽돌해변까지 와 버렸다.
바다바라기를 하고 있던 염소들이 놀라 갯바위쪽으로 줄행랑을 친다.
해안산기슭으로 나있는 탐방로를 찾는 대신 염소떼를 따라 갔다.
아찔하더라~
잘하다가는 먼훗날에 백야도 남부해안가에서 백골의 변사체로 발견되기 딱이겠더라~
말라비틀어진 풀뿌리를 잡고, 살고자 산으로 기올랐다.
이 좋은 길을 놔두고..., 뭔 지랄을 한겨??
땀범벅이 되어 탐방로내 벤치에 앉아 정신을 수습하고 있으니,
지나가는 떼거지 산행팀이 남의 처지도 모른 채, 둘에 하나는 꼬박꼬박 인사를 해 온다.
데크탐방로가 임도로 격상이 되는 지점에는 큰 쉼터가 있었고,
조금전 스쳤던 떼거지 산행팀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지가 합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맡는 삼겹살 굽는 내음은 아주 역겹다.
누군가 고맙게도 같이 드시고 가세요, 했지만..., 삼겹살은 보돌바다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A++면 몰라도...,
신기항부근 접안방파제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일전에 걸었던 보돌바다에 생긴 77번국도의 해상교량들과 섬들을 보면서 맥주를 마셨다.
화양대교를 보고 꼴깍, 둔병도를 보고 꼴깍, 낭도대교를 보고 꼴깍, 그러니 맥주가 이런 그단세 동이 나버렸다.
요즘 길에서 말을 할 수 있게된 나이의 여아들을 매번 만나게 된다.
바비인형이 말을 하는 것 같고, 꼭 천사를 보는것 같고, 보는것 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마음이다.
오늘도 백야도로 오는 버스속에서 할머니와 같이 탄 네댓살된 여아를 만났다.
할머니의 폰이 울렸고, 누군지를 확인한 할머니가 폰을 건네니 '할아버지 오고 있어요'한다.
할머니가 '가고 있어요' 해야지 하니, '할아버지 가고 있어요'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뿌고 귀여운지..., 예뻐 죽는줄 알았다.
딸이 없다는 것은 인생사 최대 비극이고,
딸이 없는 놈은, 그 허전한 마음 길에서 달래고자 맨날천날 걷는다.
14시23분, 출발을 한 백야대교 남단에 도착을 했다.
트랙을 접을까? 하다가, 지나번 이순신트레일 보돌바닷길을 시작한 세포3교차로까지 가기로 했다.
길은 이어줘야 트랙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아서...,
백야대교를 건너, 가막만과 여자만을 잇는 고돌산반도 77번국도에 접어 들었다.
남겨둔 길이 있어, 하늘이 푸른날에 걸을 수 있구나..., 싶었다.
14시53분, 3월14일 이순신트레일37회차의 시점이었던 세포3교차로에 도착을 했고 트랙을 껐다.
세포마을로 내려가는 길에서, 백야도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갔다.
언제 돌아나올지는 몰라도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답답함은 사라졌고,
일요일 오후의 한적함만이 보여지는 정류소에 앉아 비워진 뇌로 세상바라기를 한다.
아무 생각이 없더라~
남해안 해상교량 시리즈 57 - 백야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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