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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지족해협 본문

살다보면 - 픽션은없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지족해협

경기병 2021. 3. 23. 10:57

일어난 토요일 아침,

봄비는 소리도 없이 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영동할매가 며느리를 데리고 왔는데, 나가겠나...,

 

뭔 말인가 싶어 급검색을 했다.

음력 2월은 영동달이고, 무서운 달이다.

음력 2월에 내리는 비는 하늘에 사는 영동할매가 며느리를 데리고 땅으로 내려와,

며느리가 곱게 차려입은 명주치마를 얼룩지게 하기 위해 내리는 비란다.

 

뭔 말 같잖은 소리를...,

 

 

엄마는 일전에 다시멸치가 떨어졌다고 했고, 다음번 바닷길에서는 멸치를 사야겠다고도 했다.

그 말을 이유로 비 내리는 바다로 갔다.

 

 

 

 엄마에게 보여준 바다 - 지족해협 (2021.03.20) 

노량 - 남해대교

 

포항에서도, 여수에서도, 다시멸치를 사봤지만 남해멸치만 못하다고 했다.

멸치하면 지족해협이다.

비도 오고..., 

 

 

 

실안해안도로에서 본 삼천포대교와 사천바다케이블카

 

맑은 날의 바다도 좋지만, 비 내리는 날의 바다는 더 좋다.

 

삼천포로 빠진다.

삼천포는 일년에 수 번은 가줘야 한다.

볼 일도, 연고도 없지만..., 그래야 그게 인생이다.

 

 

 

삼천포어항

 

 

 

 

 

77번국도 5기(삼천포대교-초양대교-늑도대교-창선대교-창선교)의 해상교량들이 만든 바닷길을 건너,

지족해협으로 갈 것이다.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이 길에 부여된 숫자는 3번이 먼저이지만, 나는 무조건 77번으로 우긴다.

그래야 바닷길이 산다.

 

 

 

단항 왕후박나무

 

그 날, 저 나무가 만든 그늘에서 지친 걸음을 달랬다.

 

평상 귀퉁이에 아이스박스가 보였다.

그 뚜껑을 열자..., 와~ 맥주가 있네~ 에라이 잘 됐다.

누군가고 주인이고 나발이고 당장에 라이터로 병뚜껑을 따 일행들과 풀샷을 해 버렸다.

레인저형님이 병의 수에 상응하는 돈을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삼천포에서 창선도를 경유 남해도로 갈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77번국도로 가지만,

창선도를 일주한 나는 조금은 그 길이가 길더라도 섬의 서측해안으로 난 1024번지방도로 간다.

 

소벽, 대벽마을을 지나며 보이는 바다는 안중에도 없이,

남의 집 담장 넘으로 뻗어나온 가지에서 무화과를 따던 서나대원의 회상이 있는 길,

 

회상에 배시시 웃음이 머금어졌지만,

들키지 말아야 할 웃음이라 속으로만 웃으며 그 길을 지났다.

 

 

 

지족해협 - 1

 

지족해협 - 2

 

남해안 전부를 서성였던 나는 이제 회상으로 이 길을 지난다.

엄마에게 보여주고자 온 바다는 또 회상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창선교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이다.

 

같이 한 사람들도 그리웠고,

그 길에서 접한 만(灣)과 곶(串) 그리고 량(梁)과 해협(海峽)까지도 그리웠다.

 

 

육지와 육지 사이에 끼여 있는 좁고 긴 바다를 해협이라 하고,

육지와 근해의 섬을 오고가는 바다를 량(梁)이 한다.

해협을 건너는 짓, 량을 건너는 짓, 이런 짓이 한번뿐인 생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날이 갈수록 싫어지는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그나마 잘한 짓은 량의 바다에 해상교량을 놓은 짓이다.

득분에 초량(영도대교), 칠천량(칠천교), 견내량(거제대교), 노량(남해대교), 마량(고금대교), 명량(진도대교) 등의

바다는 닥치는대로 모조리 다 건넜다.

한번뿐인 생에서...,

 

 

 

지족해협 - 3

 

지족해협 - 4

 

지족해협 - 5

 

엄마가 옆에 있지만,

회상의 바다에 내리는 비는 조금은 사람을 시리게 했다.

 

시림타령을 하다가는 돌아가자고 할까봐, 미조항으로 이내 차를 몰았다.

오늘은 멸치가 테마이니 먹기도 해야해서...,

 

 

 

지족항 해안도로

 

섬이 참 깨끗하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보물섬다웠다.

 

남해군의 행정력에 경의를 표한다.

 

하나만 아는 통계는 남해도의 크기를 대한민국 다섯 번째로 열거하지만,

둘을 아는 나는 남해도의 크기를 대한민국 네 번째로 둔다.

 

남해도는 간척으로 불필요한 땅을 늘리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 

태고의 해안지선이 그대로인 섬,

그 섬이 남해도이다.

 

 

 

 

 

 

 

 

 

물건방조어부림이 사실은 진풍경인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독일마을만을 찾는다.

나 역시도 어부림은 가지 않은 채, 핸들을 우측으로 돌려 마을이 들어 선 언덕을 올랐다.

 

파독시킨 청춘들의 급여를 담보로 얻은 차관은 또 하나의 슬픈 아리랑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그들을 팔았지만, 한반도는 그들을 품었다. 

 

룸밀러로 엄마를 본다.

엄마가 파독간호사였다면, 난 게르만튀기로 태어나 지금은 북대서양연안을 서성일텐데...,

엄마는 뭐했노...,

 

 

 

미조항 - 1

 

미조항 - 2

 

갈매기가 끼룩끼룩 울며 날아다니고, 궃은 비는 나부껴야 그게 항구다.

오늘 미조항이 그렇다.

 

 

 

 

 

남해안에는 항으로 개발된 숱한 포구들이 있다.

 

가는 항 마다 최고였지만,

지협부를 가운데 두고 북항과 남항으로 개발된 미조항이 서성이기에는 적격이다.

 

 

 

미조북항

 

미조남항 - 1

 

미조남항 -2

 

살다가 심심해지면 바다로 나가면 된다.

살다가 무료해지면 항구로 가 서성이면 된다.

 

미조항은 내 냄새 잔뜩 묻혀 내가 그리운날에 오고 싶은 항이다.

열번은 넘게 묻혔는데, 아직도 내 냄새가 베여있지 않았다.

얼마나 더 쳐와야 묻겠노...,

 

 

 

 

 

 

 

현지에서 적당한 음식점을 찾고 선별한다는 것은 설왕설래의 표본이다.

 

사전 숙지를 한 식당이 없을 시에는,

"마, 아무데나 드가자"란 엄마의 짜증이 폭발하기전,

1번 테레비에 나온 집구석을, 2번 깨끗한 집구석을 우선 순위로 둔다.

 

1번 선정 기준으로 들어간 식당은 친절했다.

하기싸 팔순의 노모와 방문을 하면 불친절은 바로 친절로 바뀌더라~

그럼 나는 친절의 댓가로 금융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현금결재를 단행한다. 

 

 

 

설리해변

 

지난 이순신트레일에서 나는,

설리해안으로 내려가는 대열에서 살금살금 뒤로 빠져 곧장 그들이 입에 개거품을 물고 올라 올 합류지점으로 갔다.

인지를 했는지는 몰라도 두 여성대원도 나를 따라왔다.

탁월한 석택이었다.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 사체가 쫙 깔린 아스팔트길에 자빠져 손선풍기 바람을 쐬며 대열을 기다렸다.

이십여분뒤 해미누나가 입이 딱따구리보다 더 튀어나온 이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좋아 죽는줄 알았다.

 

오늘은 차로 이동을 하기에 설리해변을 둘러나오는 길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다하지 않음이 천만다행이었다.

 

설리해안을 돌아나오는 길,

남해군의 야심작이 보돌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입에 개거품을 물고 보이는 바다와 섬에 대하여 열나게 시부렸을텐데...,

 

 

 

2020년11월12일에 준공된 '설리스카이워크

 

 

 

뭐시 하나도 안보인다.

 

군의 살림살이가 짜칫나...,

6,000원을 주고 올라 간 마천루였는데, 본게 없다.

 

 

앵강만으로 간다.

 

일전에도 앵강만을 갔지만,

미국마을의 조잡함에 헛웃음만 지었을뿐, 걷지 않은 앵강만은 그저 그런 바다로 치부했다.

 

 

 

상주해변

 

상주해변을 지나 앵강만으로 가는 길,

19번국도를 외면하고 소량으로 가는 임도로 들어섰다.

 

그 날, 벽련항에서 바래길 시그널을 따라 두모와 소량 대량을 거쳐 상주해변으로 가는 여정이 아련히 떠올랐다.

보이는 노도가 미워질만큼 힘이 들었고 처절하기 최상이었다.

 

산화된 처절함은 회상으로 환원되었고,

환원된 회상속을 서성임은 내가 내게 선물한 상자를 열고 있음이었다.

 

 

앵강만을 지난다.

비에 젖어 처량해진 다숲이 가린 앵강만과 노도가 살며시 보였다.

역시나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랭이마을에 갈래?

갔는데 자꾸 뭐하러 가노! 이란다.

 

에라이~ 왕지벚꽃길이나 가자!

 

 

 

문항마을 새미 - 2021.03.20.

 

문항마을 새미 - 2018.07.21.

 

 

노량을 건너 남해도로 들어선 날,

그 날은 날이 너무도 더워 사람 뜨죽는줄 알았다.

 

 

 

강진로 강진교 - 2021.03.20.

 

강진로 강진교 - 2018.07.21.

 

 

그 날은 노량에서 남하를 했고, 오늘은 노량을 향해 북상을 한다.

 

 

 

 

왕지마을 정자 - 2021.03.20.

 

왕지마을 정자 - 2018.07.21.

 

 

보이는 정자에 겨우겨우 도착을 했고, 모두들 곡소리를 내며 뻗었다.

 

레인저형님이 웃통을 벗고 바다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바다로 스며드는 개울물을 코펠에 받아 몸을 행구고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 날은 물이 차 있었는데...,

 

 

돌이켜보건데 남해도 북부해안의 왕지벚꽃길이 남해안 최고의 바닷길이었지 싶다.

 

 

 

2021.03.20.

 

2018.07.21.

 

 

이 길을 걸었노라!

하지만, 길은 떠벌리는 대신 혼자서 회상으로 간직함이 맞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노량으로 가는데...,

 

 

 

옥동등대

 

 

그 날은 유·무조차도 몰랐던 등대 하나가 노량을 보고 있었다.

 

운이 있는 날인가? 싶었다.

기억처럼 서 있는 등대였고, 낡은 자태는 그래서 더 고귀해 보였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쇼윈도 글라스에 눈물이 흘렀다.

그 기분이 든 봄비 내리는 날의 남해도였다.

 

 

 

남해대교

 

어디서 들었는지? 술상포구에 가보자고 했다.

 

2018년 첫 전어를 먹었던 포구,

역시 좋더라~

 

 

 

술상포구 접안방파제

 

 

오락가락 내리는 비가 바다에도 봄의 씨앗을 뿌리는 날에, 회상이 된 길을 따라 그 바다를 서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