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그렇게도 살았다 - 탄광문화촌 & 아우라지 본문
살아가는 날들이 짙어지길 바라며 산다.
무엇인가에 물들어 짙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짙어지고 싶다.
짙어지고 싶어 11시30분쯤,
여든둘 노모를 데리고 정처 없는 길로 나섰다.
그렇게도 살았다 - 탄광문화촌 & 아우라지 (2022.11.12)
비가 온다는 주말이다.
비가 내릴때도 됐다 싶었지만, 못내 아쉬운 하늘이다.
목포로 가 다이아몬드제도 남각으로 떠나는 뱃길에 태워지고 싶었지만,
오후부터 내릴거란 비 때문에 그 바다 그 뱃길 그 섬을 다음으로 미루고 경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정선으로 갈 것이다.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정선으로 들어가고,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동해시로 빠져나와,
동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유값 일십만 원치 여정이다.
엄마는 세상을 서성이다 짙어지고 픈 미친놈을 닣았고,
엄마는 엄마를 집에 두고는 떠나지 못하는 미친놈 때문에 오늘 하루도 길에서 보내야 한다.
부디 오늘 이 긴 여정을 엄마가 잘 견뎌주고 즐겨주길 바라며,
아오라지! 그 삶의 리얼리티가 강물이 되어 흐르는 그 곳을 향했다.
14시쯤 중앙고속도로 북단양나들목을 빠져나왔다.
제천 맛집이라고 치니, 정선으로 가는 방향에 손두부집이 표출된다.
두부..., 별론데, 하면서도 검색된 식당을 찾아갔다.
역시 두부는 별로인 음식이다.
굽고 찌지고 별에 별 지랄을 떨어도 두부는 두부일뿐이다.
친절이 맛이었고,
기름 칠갑을 한 두부를 외면한 엄마는 밑반찬만으로 밥을 먹었다.
제천을 벗어난 38번 국도를 영월군 한반도면에서 빠져나와,
정선으로 가는 42번 국도를 찾아 북상을 하는 길에 마차라는 지명을 지나게 되었다.
16시가 다된 시각,
영월군 북면 마차리를 지나다가 '강원도탄광문화촌'을 외면하지 못하고 차를 세웠다.
오일장이 열리는 정선 아리랑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아우라지에 닿아야 하는데...,
재현된 그 시절 그 곳에서의 사람 살아가는 풍경을 보고 정선읍으로 가는 길,
엄마가 태어나 고생만을 하다 간 사람들에 대하여 안스러워 한다.
그 속엔 분명 당신 아버지도 있었을 것이다.
한 날 엄마와 함께 어디론가 가는 데,
뒤에 앉은 엄마가 차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면 혼잣말을 한다.
무슨 말인데, 하고 물으니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나서 그런다고 했다.
첩첩산중길 35km를 굽이굽이 돌아 16시40분쯤,
재작년 8월 엄마와 함께 왔었던 정선읍 아리랑시장에 다시 오게 되었다.
파장의 분위기일거라 짐작을 한 산골 오일장은 그때까지도 활기가 남았고,
전국 각지의 번호판을 단 관광버스들까지 찾아 든 정선 오일장의 규모는 대단했다.
엄마는 장을 보고,
나는 경찰서앞 덜 분주한 시내를 서성이며,
그가 통영 다음으로 좋아한다는 정선읍내 하늘에 뭉게구름을 피워 올렸다.
반건조 명태 한 다발을 사 들고 온 엄마를 교육지원청앞 도로원표 표지석에 앉혀두고,
차를 대놓은 경찰서앞 공터로 갔다.
그 5분이 참 처량하더라~
조양강이 골지천으로 바뀌어 흐르는,
그 물길과 병행하여 난 42번 국도 가장 아름다운 선형을 따라가니,
해가 진 저물녘 정선선의 실질적 종착지 아우라지역에 도착이 되었다.
역사 건너편 장터의 초가들에서 밝히는 노란 불빛이 선명해질수록,
아우라지의 풍경은 어둠속에 숨어버리니..., 또 왔노라! 그 뿐인 탐방이 된다.
네이비에 아우라지관광지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왔어야 했는데, 바보처럼 아우라지역을 치고 왔다.
그로해서 아우라지, 그 지명의 유래가 된 풍경은 볼 수도 없었다.
어차피 어둠이 내려 풍경은 숨었다.
그게 위안이었다.
우째던간에...,
엄마와 함께 나는 아우라지로 왔다.
시린 선로,
태백선 민둥산역에서 분기된,
더 시린 선로,
정선선 현재의 마지막 종착역, 아우라지역에 엄마와 함께 있다.
아우라지에서 맞닥뜨린 저물녘,
그 저물녁을 물들이는 색은 어둠이 아니라 분명 시림의 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남은 반의 여정이 막연해도,
산다는 것은 시릴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임을 알기에,
인자 집에 가자는 엄마의 거듭된 제촉을 버티며 아우라지 그 저물녘을 서성였다.
다섯시간여를 달려 찾아 온 아우라지에,
십여분을 머물고 떠나려하니 밑지는 장사치의 심정 저리 가라였다.
허나 잠은 집에서 자야하고,
내일 아침이 집이면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갈 수 있기에 낙향의 수순에 들어섰다.
여랑면 아우라지교차로에서 동해시 북평교차로로 가는 암야고도 일백삼십리,
그 중간쯤 임계가 없었다면 아마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42번 국도 여랑에서 동해까지는 오체투지였다.
암야고도 일백삼십리 오체투지를 끝내니,
해파랑의 바다가 나타났고 해파랑의 길에 접어 들 수 있었다.
비록 320km가 남았지만, 그 길은 7번 국도였기에 그건 걱정도 아니었다.
제천을 지나 남하를 하라고 한 네이비는 자정을 넘길거라 했지만,
임계를 지나 동해로 탈출해 남하를 한 고집은 22시쯤 문수나들목을 나오게끔 했다.
문수나들목을 빠져나오니 비가 내린다.
아우라지를 서성이며 물들인 시린색이 이 비에 씻겨지면 안되는데...,
엄마가 어서 집에 가자고 제촉만 하지 않았어도 이 비에는 씻기지 않을 짙음을 배이게 할 수 있었는데...,
엄마가 잠에서 깨어나 '집에 다 왔네'라고 하니, 오일게이지도 반짝였다.
그러니 시림은 다 날아가고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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