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2023 도드람컵 프로배구 직관 - IBK기업은행 황민경 선수 본문
35˚를 넘나드는 기온 속,
내륙도시 구미를 찾아 온 이유는 분명 따로 있었다.
식당을 나와 아직은 나만이 아는 이유를 실현시키고자 박정희체육관으로 가는 길,
오늘 구미로 온 이유를 알리는 홍보깃발들이 더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지만,
엄마는 잠시뒤 처할 상황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 IBK기업은행 황민경 선수 (2023.7.30)
15시10분 박정희체육관에 도착을 했다.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챈 엄마는 으레 '그냥 집에 가자'라 했다.
팔순을 넘긴 엄마와 경기장을 찾아 직관을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조금은 벅찬 관람석으로의 이동과,
배구의 룰을 전혀 모르는 엄마가 경기에 흥미를 느낄까?란 걱정이 들었지만...,
살다보면...,
이럴 땐, '에라이~ 모르겠다'가 늘 답이었다.
출발 전 인터파크에서 예매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그 절차에는 다수의 사전 지랄들이 붙어있어 나 살 처먹고 할 짓은 못돼 창을 닫았다.
그로해서 현장구매는 3층 비지정석 뿐이었고,
미친놈을 아들로 둔 엄마는 박정희체육관 3층 등반길에 올라야 한다.
엄마는 무릅의 통증이 예상되는 길목에서 으레 '안갈란다'는 포기성 발언을 해 왔고,
나는 엄마가 그럴때 마다 으레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허무의 표정을 짓곤 했다.
오늘 역시도 그 과정을 거친 15시30분,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IBK기업은행 알토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경기가 열리는,
박정희체육관 3층 관람석에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코트를 내려다보며 워밍업이 한창인 선수들에서,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흥국생명 김연경 선수를 단 번에 찾았지만,
나는 코트를 내려다보며 워밍업이 한창인 선수들에서,
이제 기업은행 소속이 되어 하얀색 유니폼을 입었을 황민경 선수를 찾고자 분주히 시선을 돌렸다.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서 올해 IBK기업은행 알토스로 팀을 옮긴,
황민경 선수의 이적 후 첫 경기를 응원하고자 오늘 구미로 왔다.
대한민국 구기종목 사상 올림픽 첫 메달은 1978년 몬트리올에서 여자배구팀이 따냈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에 이어,
2020년 도쿄올림픽 4강에도 진출한 대한민국 여자배구는,
김연경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를 계기로 기약없는 추락의 하향곡선에 놓였다.
2023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는 작년에 이어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서구의 신장과 파워에 그간 열정으로 싸운 선전은 최선을 다한 정점을 찍었고,
태국의 거센 도전에 내 남은 생에 여자배구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함은 이제 더는 없을 듯 하다.
추락중인 대한민국 여자배구이지만 그들은 할 만큼 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좋아하는 배구를 즐기면 된다.
헝그리 투혼의 대한민국 스포츠는 이제 사라졌다.
승리는 즐기는 자의 것이다.
경기가 시작됐다.
태광산업에 10여 년을 다닌 엄마에게는 흥국생명을 응원하라고 일러주었지만,
어느새 나를 따라 기업은행이 득점을 낼 때마다 박수를 치고 있었다.
1세트 종료 후,
인자 집에 가까?라 물으니,
흥국생명 아웃사이드히터 정윤주 선수의 강스파이크에 매료된 엄마는 좀 더 보고 가자고 했다.
2세트 역시도 기업은행의 승리로 끝났다.
주포 김연경을 투입시키지 않은 흥국생명은,
황민경이 맹활약 중인 기업은행의 오늘 적수로는 부적합이었다.
3세트는 보나마나였고,
불편한 좌석에서 한 시간 이상 엄마를 앉혀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 경기종료 후 순식간에 몰릴 인파 속 이동이 염려스러워 이쯤에서 일어서기로 했다.
19시20분쯤,
포장한 돈까스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SBS Sports 채널을 켜니,
조금 전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직관을 한 경기가 녹화중계 중이었고,
마침 보지 못하고 나온 3세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든셋 엄마와 쉰넷 아들의,
직관에서 중계로 이어진 일방적 응원을 받은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완벽한 승리를 했고,
이적 후 첫 경기에 나선 황민경 선수는 양팀 통틀어 최다인 17득점을 기록하며 경기 MVP가 됐다.
2023~2024 시즌
황민경 선수의 꾸준한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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