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녹두꽃이 떨어지면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본문
구월이 되고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맹렬한 기세의 폭염을 장착한 올해 여름은 쉽사리 물러날 기미가 없다.
날은 덥지만 그렇다고 머물순 없어,
쿨러에 보냉제와 음료수 그리고 물을 담아 11시쯤 엄마와 함께 정처없는 길로 나섰다.
오늘은 어디로 가 무얼하며 서성이노...,
녹두꽃이 떨어지면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2024.9.7)
반경 내 서성일 곳은 이제 더는 없다.
그렇다고 반경을 벗어나도 이렇다할 그런 곳도 없다.
토요일은 서진이니,
무작정 남해고속도로에 차를 올리고 그저 달리기만 했다.
서순천JC 통과,
그리고 들어선 호남고속도로...,
길에서 찾은 오늘의 정처는,
깻다리 형님의 고향, 호남의 심장, 샘고을 정읍이 됐다.
엄마는 정읍에 한 번도 간 적이 없기에...,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는,
개화기 이전에는 전주가 이후에는 광주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호남의 심장(중심)은, 단언컨데 동학의 혁명지 샘고을 정읍이다.
정처없이 나선 길에서 정처를 정했고,
그렇게 정처가 정해지니 정처에서 행할 일정도 정해졌다.
정읍에 들면,
우선은 덕천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예방하고,
그런 다음 샘고을시장에서 공정여행을 실천을 하고 쌍화차를 마시고...,
그런 다음에 형님께 나 왔노라는 전화를...,
집을 나선지 4시간 30분이 지난 15시30분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건립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도착을 했다.
왕은 등신이었고,
왕이 등신이니 그의 아버지와 그의 아내는,
오랑캐와 왜놈까지 불러들인 치열한 정권쟁탈전을 펼쳤다.
개판이 된 나라,
더는 살 수가 없었다,
에라이 시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다!!
무개념들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민비를 명성왕후라 부르며 그 미친년을 옹호하는 년,놈들을 볼 때마다 사람 환장하겠다.
녹두꽃을 떨어지게 한 년은 민비였다.
세도정치의 여럿 폐악들 중,
가장 큰 폐악은 상등신 고종의 옹립과,
그 상등신에게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년 민비를 붙인 짓이다.
자칭 국모가 된 년은,
굶고 있는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내한 외국인을 상대로 왕실의 자산을 거둴내기 일쑤였다.
녹두꽃은 떨어졌다.
그리고 청포장수는 울고 갔다.
이순신 장군,
다음은 안중근 의사,
그리고 그 다음은 녹두장군 전봉준이다.
잔상으로 남을 안스러운 역사를 보고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나왔다.
엄마가 탄 휠체어에 수동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며,
기념관과 추모관으로 가는 경사로에 들어서니 전화벨이 울린다.
헉!
아니, 이런 경우의 수가!!
지금 정읍을 서성이는 내게 전화를 건 사람은,
지금 정읍의 고향집에서 칩거 중이신 깻다리 형님이었다.
2,400km가 끝이 나니,
그 길에서 만난 인연도 따라서 끝이 났다.
그 길에서 부어라 마셔라의 영원한 동행자였던 형님의 고향 정읍에,
나는 지금 엄마를 데리고 와 있음이 생이고 논픽션이다.
마주하는 전시물들에서,
호남의 심장은 정읍이라는 내 주장에 확신이 실린다.
혁명이 성공을 했다면,
녹두꽃은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풍철의 내장산으로 각인된 정읍에는,
이런 역사가 있었고 그런 역사를 알리는 기념관도 있다.
근데 기념관을 찾아 온 사람들의 수가 너무도 초라하다.
날이 더워 그런가?
그래도 참고 또 그래도 참고 살았지만,
더는 견딜 수가 없어 피어난 녹두꽃이었는데...,
다시는 조선에서 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농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나왔다.
오늘 길에서 찾은 정처는 정읍이었고,
비록 부산으로 돌아갈 길은 아득하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처음으로 정읍에 왔고,
밀려오는 졸음을 참아내며 차창으로 보이는 낯섬에 눈을 떼지 않았다.
도대체 정읍의 인구가 얼마나 되길래...,
뭔 시장이 이리도 넓냐...,
엄마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넓디 넓은 샘고을시장을 30여 분 배회를 하다가,
산거라고는 배추김치 만 원치가 전부였다.
17시가 지난 시각,
정읍 탐방의 마지막 도처,
수성동 전설의 '쌍화차거리' 각시다리꽃길에 닿았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한 잔 9,000원 쌍화차의 6,000원치를 남기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형님께는 엄마의 약 핑계를 대며 시간이 없어 곧장 가야한다고...,
18시쯤 정읍을 출발,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고,
주구장창 처밟아 집으로 돌아오니 22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강원도 다음으로 매력을 가진 고장 전북,
그래서 둘 다 특별자차도가 됐나? 싶더라~
'기념투어 - 전시기념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라 잃은 사람들의 비애 -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0) | 2024.10.12 |
---|---|
그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 유엔평화기념관 (0) | 2024.10.11 |
17연대를 기억하라 - 화령장전투전승기념관 (0) | 2024.09.11 |
이순신대교 통과 그리고 - 이순신대교홍보관 (0) | 2024.09.09 |
내세울 것 없는 도시가 건립한 - 양산시립독립기념관 (0) | 2024.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