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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이 될 길의 기록

해파랑길 46코스 - 장사항에서 삼포해변 본문

해파랑길 - 동해바닷길

해파랑길 46코스 - 장사항에서 삼포해변

경기병 2020. 7. 21. 15:49

내년쯤에나 걸어야지..., 했는데,

해파랑길, 유일하게 남겨둔 46코스를 뜻하지 않게 채우고자 09시 집을 나섰다.

 

남들은 한번 길로 나서면 1박을 감수하기도 하면서 최소 서너코스는 이어놓는 해파랑길이지만,

의지박약형에 밖에서는 절대 혼자 못자는 나는, 가급적 당일 트레킹만을 추구했다.

 

그 마저도 걷기가 싫어지면,

시점으로 찾아 간 만만찮았던 이동의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돌아서 집으로 오곤 했다.

 

그래서 2016년9월에 시작한 내 해파랑길은 아직도 진행중이었고,

지난 5월 그 끝을 내고자 고성속초구간으로 갔지만, 끝내 46코스는 채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내년쯤에나 채워야지..., 했는데,

십여년만에 부산~양양간 항공노선이 복원되었고, 한번 타봐야지~ 싶었다.

득분에 4년째 끝을 못낸 길도 종지부를 찍고...,

 

 

 

 

 

09시 집을 나와,

동해물이 영랑호에 넘실거리는 해파랑길, 마지막 그 길의 시점에 도착을 하니 13시였다.

 

추정한 거리는 16km,

그러니까..., 내 해파랑길은 16km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끝을 낸다는 말에 스민 의미가 사뭇 짠하다.

더는 안볼려고, 훌훌 털어낼려고, 정점을 찍었기에..., 그래서 끝이나고 끝을 낸다.

 

허나, 나는 안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을 서성이는 농부의 허전함을, 소멸시킨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 못올 것에 대한 추억을...,

끝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가슴 저민 이별을 스스로 택함이다.

 

질질 걸치고 있어야 하는데...,

밋밋한 삶에 떠남의 카타르시스를 알게 해준 길과 이별을 하고자 그 길에 섰다.

 

 

 

 해파랑길 46코스  - 장사항에서 삼포해변 (2020.07.18) 

집으로 돌아가는 강릉 밤하늘에서 내려다 본 643km의 회상

 

 

길과의 헤어짐, 해파랑길 마지막 트레킹이다.

질질 끌다가 겨울이 오면, 하얀 포말이 부숴지는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헤어지고 싶었는데...,

 

 

 

속초등대

 

 

46코스에 들기전, 예나 지금이나 한대 태운다.

지난 5월 45코스를 걷다가 탐방을 한 속초등대가 나를 보고있다.

 

나는 태생적, 성장적, 영위적 그 모든 환경의 터전이 부산·경남에 국한된 삶을 산다.

그래서 서울 갈 일도 별로 안생기는 인생이었고, 더군다나 강원도는 여행의 형식이 아니면 올 일이 없는 삶이었다.

 

빈약한 의지 때문에, 해파랑을 시작하고 강원도에 열다섯번은 넘게 왔지싶다.

길을 끝내는 오늘이 지나면 다시 인생은 강원도에 올 이유가 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지난번 남하로 걸은 45코스는,

버스에서 자불다가 장사항을 두 정거장이나 지나쳐 내린 탓에 영랑교에서 시작을 했다.

 

이번 북상으로 걷는 46코스는,

그래서 1km가 덧붙혀졌지만..., 이제 아쉬워질 길이라서 그 마저도 더 남겨 놓지 못함이 아쉬웠다.

 

 

 

 

 

해파랑 마지막 걸음인데, 시작부터 짜증스럽다.

 

조금은 예상을 했지만...,

길의 바닷가쪽 가장자리는 주차된 차량으로 빈틈이 없고, 상가들이 밀집된 반대편은 도떼기시장이다.

 

그러고보니, 세월은 바이러스 형국속에서도 어느새 여름 휴가철이 도래해 있었다.

 

 

 

 

 

장사항을 벗어나 잠시 7번국도로 나왔다.

 

바다를 우측의 풍경으로 두고 걷는 해파랑길이지만, 그 모길은 누가 뭐래도 7번국도이다.

마지막인데..., 7번국도로도 걷고 싶었다.

 

 

 

 

 

46코스에는 어림잡아 8개소의 해수욕장이 분포하고 있다.

빈 풍경 대신 꽉찬 풍경이, 한적함 대신 번잡함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겨울에 와야했는데...,

괜히 신규노선 취항에 혹해, 아름다워야 할 이별걸음을 짜증걸음으로 자초하게 되었다.

  

 

 

죽도

 

 

해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킬링이 한창이고,

그 해변을 지나야하는 나 역시도 피할 수 없는 킬트레킹을 감수해야만 한다.

 

덥고..., 짜증스럽고...,

꼭 이런 날에, 이렇게까지 걸어야 하는지? 그제서야 오늘 길로 나옴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봉포와 천진해변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니 정자 한 채가 나왔다.

청간정이라고 했다.

 

나는 해파랑길에 빌붙어 있는 것(유적지, 인위적 조형물, 호수 등)들이 추잡스러워,

종주의 해안길과는 무관하게 그 곳을 갔다오도록 한 선형은 쳐다도 안본 채 싹뚝 짤랐다.

 

특히, 정(亭)으로 끝나는 조선판 유흥정자는 꼴불견 그 자체였다.

 

왕복 100m 남짓이었지만, 에라이~ 헛걸음에 허탈해진 기분으로 그 곳을 내려왔다.

 

 

 

청간해변

 

 

 

날은 좀 더 더워졌고, 기분은 좀 더 따분해졌다.

청간해변 천진천하류에 퍼질러 앉아, 송사리떼와 빵을 나눠 먹었다.

 

 

 

아야진항

 

 

아야진...,

 

해안길을 가다가 닿는 포구에서 그 독특한 지명이 주는 설레임이 좋을 때가 있다.

특히 제주도와 강원도 해안에 위치한 포구들의 지명이 그렇다.

 

그건 아마도 한학자들의 고상한 관여가 없었기에, 붙혀지고 불려지는 지명이지 않을까? 싶다.

 

 

 

 

 

북으로 가면 교암해변이고, 남으로 가면 아야진해변이라고 알으켜주는...,

 

해파랑길가에 심심찮게 서 있는 방향안내판은,

마흔여덟에 발견한 내 삶의 터닝포인트였고, 앞으로의 내 삶에서 부동의 이정표가 되었다.

 

물론,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고 아직 담배도 못끊고 있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늙어)가는 나를 설레이게 했고, 멀어져 가는 청춘을 붙들게 했다. 

 

 

 

 

 

이제, 그 길은 채 5km도 남지 않았다.

 

 

 

교암해변

 

문암항

 

 

아쉬운 마음에 걸음은 늦쳐졌지만, 쉽사리 멈춰서지는 못했다.

남겨두지 못하는 내가 조금은 싫어지더라~

 

 

 

문암대교

 

백도해변

 

문암1리항

 

 

동해안 4광역시·도, 17시·군·구를 연결한 해파랑길 득분에,

동해안 사람들이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참 모습도 보았고, 새로운 인연들도 만났다.

 

이 길을 걸을 수 있어 진정 행복했다.

 

 

 

자작도해변

 

 

어느새 일곱 곳의 해변을 지났다.

여덟번째 해변은 삼포고, 그러면 오늘 길도 끝이나지만, 해파랑 모든 길이 끝이 난다.

 

 

 

 

 

2020년 7월 18일 16시40분,

내게는 해파랑길 마지막으로 걸은 46코스의 종점 삼포해변에 도착을 했다.

그로해서 해파랑길은 모두 끝이 났다.

 

 

한대 태우며, 혼자 걸어서 혼자 자축을 해야하는데..., 붐비는 사람들 틈에 쉴 곳은 없었다.

공중화장실로 가 땀과 썬크림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목을 씻었다.

 

씻다가 윗옷이 다젖어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세면대에 놓아둔 시계가 사라졌다.

숱한 길들을 같이 한 시계였는데...,

길에서 잃어버린게 어디 시계뿐인가?

길에서 잃어버린게 어디 한두개였나?

잘 차라~

 

 

쏵 씻고, 7번국도로 나오니 속초로 나가는 1번(고성~속초간)이 금새 왔다.

장사항입구에서 이십여분을 우두커니 서성이니 양양읍으로 가는 9번(속초~양양간)이 왔다.

 

 

 

삼포리 군인관사앞 정류소

 

 

조마조마 했는데,

청초호를 끼고 속초시내를 돌아야하는 버스는 미친 속도로 남하를 해 18시50분 양양읍에 도착을 했고,

18시55분 공항으로 가는 셔틀버스는 무사히 타졌다.

 

공항내 식당이 없어 편의점에서 딸기우유 한 팩으로 급박하게 저혈당을 막고,

탑승시간을 기다리는데, 조금씩 허전한 마음이 느껴진다.

 

벽파진까지 같이 간 시계를 잃어버려 그런지? 

아니다. 시계야 또 사면 그만이고, 이제 더는 걸을 길이 없어진 해파랑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해파랑길을 다 말아 먹어버렸다!

 

 

 

 

 

행은 상관 없고 열은 무조건 A로 달라고 했다.

 

부산으로 가는 밤하늘에서,

4년간 이어 온 동해의 해안지선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내려다 보았다.

해안가 사람의 집들이 밝힌 불빛이 시리도록 그리워질 그 선을 회상으로 덧칠하고 있었다.

  

 

 

 

 

한반도 동측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해파랑길은 절대 끝나지 않았다.

아직 그 길 전부를 다 걸어간 사람은 없다.

 

남한이고 북한이고, 국민이고 인민이고, 공산주의고 민주주의고, 그런 나눔은 좋아하는 니들끼리 나눠라!

엉켜붙어 생지랄을 해도 언젠가는 다 디지는 유인원일뿐이다.

 

아나키스트는, 말무리반도에서 두만강하류까지 남은 해파랑길을 이을 것이다.

왜 내가? 이념에 미친색히들 때문에 남은 절반의 길을 걷지 못해야하는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