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남해안을 더럽힌 인간 - 보성만 악마 오종근 본문
이순신트레일 19트랙(2019.03.02)은,
고흥반도 서북부에 자리한 장선포를 출발해 장흥반도가 시작되는 수문해변으로 가는 보성만 서북부해안길이었다.
남해안을 더럽힌 인간 - 보성만 악마 오종근
만(灣)의 중심에 득량도가 자리하고 있어 흔히들 득량만이라고 일컫는 보성만(寶城灣)은,
고흥반도와 장흥반도 사이에 들어찬 바다로 그 만입부에는 금당도를 비롯한 완도군의 여럿 섬들이 산재해 있다.
만(灣)은 사람 살아가라고 육지로 파고 든 바다다.
사람들은 이 바다에서 뻘배에 엎드려 꼬막을 캐고 산란하러 온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이 순박한 바닷가에도 악마는 있었다.
악마의 이름은 1938년생 오종근,
악마는 무등록 1톤 어선으로 쭈구미 등을 잡아 그의 아내가 읍내시장에 내다팔며 생활을 했다.
2019년3월2일 14시25분,
출발점으로부터 24km를 걸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동율리 '우암선착장'을 지난다.
악마의 배가 평소 접안을 하던 곳이다.
2007년8월31일 17시20분,
광주에서 보성으로 여행을 온 대학신입생 김군(당시20세)과 추양(당시20세)은,
출항 준비중인 악마 오종근(당시69세)에게 배를 태워달라는 부탁을 했고, 악마는 이를 받아들였다.
30여분을 항해해 어로작업장에 닻을 내린 악마는,
손녀뻘인 추양에게 성욕을 느꼈고 실행에 방해가 될 김군은 뒤에서 밀어 바다에 빠뜨렸다.
배로 오르고자 발버둥치는 김군을 삿갓대로 내려찍어 살해한 악마는 추양에게 성추행을 시도했다.
허나 추양의 격렬한 저항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추양 또한 바다에 빠뜨려 김군과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9월1일 추양의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단순 실종으로 사건을 처리했다.
9월 3일 17시50분,
고흥군 도양읍 용정리 해상을 지나던 어선에 의해 추양의 사체가 발견되었고,
9월 5일 15시50분에는,
보성군 득량면 비봉리 청포선착장 앞바다에서 김군의 사체가 떠 올랐다.
꽃보다 더 아름다웠을 두 청춘들을,
도피할 곳 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악랄하게 살해한 악마 오종근은,
사체가 발견된 3일과 5일에도 두 청춘들을 살해한 같은 바다에서 쭈꾸미를 잡았다.
(이런 시발새끼를 당장에 쳐...,)
사건을 담당한 여수해양경찰서는,
양 발목이 골절된 김군의 상처를 확인하고도 실족사 또는 동반 극단적선택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해경의 안이한 대처는 악마 오종근의 잔인한 범죄를 완벽하게 덮어주었다.
(이런 멍청한 철발통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추석연휴,
악마 오종근은 읍내 시장에서 쭈구미를 팔던 중,
보성으로 여행을 온 조씨(여, 당시24세)와 안씨(여, 당시23세)를 만난다.
배를 태워주겠다며 이들을 유인한 악마는,
2007년 9월 25일 11시, 그 전의 선착장이 아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들를 배에 태워 보성만으로 나간다.
육지에서 피아식별이 불가한 보성만 한 가운데에 배를 세운 악마는,
조씨가 선실로 들어 간 사이 안씨에게 성추행을 시도했지만 조씨까지 합세한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다.
먼저 안씨를 밀어 바다에 빠트렸고 조씨 또한 목을 조른 다음 바다에 빠트렸다.
조씨는 조류에 떠내려가고, 배를 붙잡은 안씨는 삿갓대로 찍어 살해를 했다.
같은 날 15시36분,
율포해변(추정)으로 나들이를 나온 부부의 남편 휴대폰으로 급박한 문자메세지가 수신되었다.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요, 배 타다가 갇힌 것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란 내용이었다.
악마 오종근의 무면허 1톤 어선을 타기 전,
같이 온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는 30대 여성에게 조씨는 휴대전화를 빌려줬다.
위험을 감지한 조씨가 현재 자신들의 상황을 가장 잘 전달해줄 사람에게 보낸 구조요청이었다.
부부는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보성만 해안과 해역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다음날 08시25분 득량만 부근에서 조씨의 시신을, 이틀뒤 28일에는 안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피해자들의 시신에서 타살 흔적을 의심한 경찰은,
관내 335척의 선박에 대한 당일 출항여부 등을 조사했고,
악마 오종근의 배가 오전과 오후 선착장 정박 위치가 상이함을 밝혀내고,
곧장 선박의 내부를 수색하여 피해자들의 소지품(신용카드, 머리끈, 여자머리카락 등)을 찾아냈다.
악마 오종근을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그의 집을 급습해 악마를 검거했다.
경찰서로 연행된 악마 오종근은,
소변을 보러 선내에서 이동하던 안씨가 실족했고 조씨가 이를 잡으려다 같이 바다에 빠진 안전사고라 주장했다.
증거물과 부검결과를 제시한 경찰의 추궁이 완벽해지자 그때서야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은 한 달전 광주에서 온 두 명의 대학생 사망사건도,
실종 장소가 가깝고 사체의 피해부위가 비슷한 점을 근거로 또 다시 집중심문을 했다.
하지만 악마 오종근은 '본 적이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런던중 범행 해역부근에서 어망에 걸린 디지털카메라가 나왔다.
악마 오종근의 1차 범행에 희생된 대학생들의 것으로 추정이 되었고,
복원된 카메라에는 악마 오종근이 사건 당시 배에서 작업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또한 피해자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에서는 범행시간대 총 4회에 걸쳐 119로 통화를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나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한 게 잘못이다.
많은 배들 중에 왜 하필이면 내 배를 태워달라고 했는지, 공짜로 태워준다니까 낼름 탄 그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
그 사람들보다 지금 내가 더 불행해졌다.
죽은 사람들은 이미 죽었지만 살아있는 나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당하고 몸까지 아프다.
명확한 증거에 범행을 시인한 악마 오종근이 수사과정에서 한 말이다.
죄책감 따위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악마 오종근의 범행동기는 '여자를 만져보고 싶었다'였다.
악마 오종근은 4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1심은 사형을 선고했다.
2심의 항소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이 있었지만 사형은 유지되었다.
2010년6월10일 3심의 항고 기각으로 악마 오종근의 사형은 확정되었다.
1년후 악마를 아버지로 둔 장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동안 보성만 회천 앞바다는 죽음의 바다라는 치욕을 견뎌야 했다.
사형은 선고하되 집행은 하지 않는 대한민국은,
피해자들이 낸 세금으로 하루 세 번의 1식1국3찬의 백반을 차려 금수를 연명 아니, 보호하고 있다.
우암선착장을 지나니 율포해변이었다.
고운 입자들 때문인지, 걷는 걸음이 더 없이 좋다.
그리고 나타난 율포회센터에서 숭어회 한 접시를 이만원에 구입해 인근의 정자에서 일행들과 나눠 먹었다.
술 취한 뇌로 보성만을 바라다본다.
육지로 파고 든 바다가 내어주는 것들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바다가 그 삶을 보우한다.
평화밖에 보이지 않았던 그 바다에서 꺽여진 꽃들의 영혼을 바다가 한 없이 달래주고 있음을 알기에,
치미는 분노를 겨우겨우 참아내며 남은 길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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