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거금대교 건너 오른 적대봉 본문
일요일, 모처럼 홀로 집을 나섰다.
거금도로 갈 것이다.
그 섬의 꼭대기에서 이제는 회상이 된, 내가 걸은 길들을 내려다 볼 것이다.
이순신트레일 - 아리랑길 24의 섬 길은 거금도였다.
2019년2월2일, 4시간 먼저 앞서 간 이들을 추종하고자,
동정에서 적대봉을 넘어 오천항으로 내려설까?도 싶었지만, 산 보다는 바다가 좋아 일주도로만을 따라 걸었다.
오름은 싫지만...,
그 날 오르지 못한 그 섬의 꼭대기에는 꼭 한 번 오르고 싶었다.
내게도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는 있다.
오랫만에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난다.
11시가 조금 넘어 고흥반도에 들어섰다.
밥이 고픈건지? 술이 고픈건지? 여튼 밥, 술 다 먹었다.
그리고 폰을 식당에 맡긴 채, 반도의 끝으로 가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를 건넜다.
거금대교 건너 오른 적대봉 (2021.11.21)
하늘이 회색이다.
어쩌면 거금도는 흐린날이 더 어울리는 섬인지도 모른다.
그 날 일주를 하고도, 엄마와 함께 두 번을 더 이 섬에 왔었다.
그리고 오늘 또 이 섬으로 왔다.
섬의 꼭대기 적대봉을 오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 다리가 바다를 휘감아 만든 바닷길이 또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한반도 연안에 놓여진 육지와 섬을 혹은 섬과 섬을 잇는 해상교량들 중, 난 거금대교가 제일 좋더라~
그가 하늘에서 담아 준 바닷길이, 그가 아침에 준 장갑보다 더 소중했다.
장갑은 엄마에게 줘버렸다.
살다가 이 길이 그리워지면...,
그가 준 바닷길을 볼테고...,
그러면...,
이 길이 더 그리워져 또 이 곳에 오지 않고는 못배길것 같다.
뜻한 바 이뤘는데...,
구지 저 꼭대기를 올라야하나, 싶었지만...,
14시쯤 적대봉을 최단거리로 오르는 파성재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난 이제 세상의 모든 오름은 다 싫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산도, 입신을 위한 그 어떠한 행위도..., 다 싫다.
내가 가자고 해 왔는데..., 아 미치겠더라~
파성재에서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 죽는 줄 알았다.
2019년 1월 지리산 천왕봉 이후의 처음 산행이었고,
2020년 12월 제주해안길 표선~온평 이후의 처음 트레킹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능선이 시작되는 마당목재에 오르니 적대봉에 다가서는 그들이 보였다.
다소 완만해진 능선길이라서 할 수 없이 오름을 이었다.
남들의 하산길 말미에 시작한 오름이라 산은 비워져 있었고,
가을의 끝자락이 머무는 남녘바다 외로운 산은 퇴색이 한창이었다.
한 시간여의 사투끝에, 거금도 꼭대기 적대봉(592m)에 올랐다.
울릉도 호박막걸리, 낭도 젖샘막걸리, 고흥 유자막걸리, 각각 1통씩을 배낭에 넣고 올랐지만...,
단 한 통도 따지 않았다.
산하대해가 섬과 산을 감싸고 있다.
적대봉 참 좋더라~
쉬어가는 세월에 어떤 하루가 있어,
숱한 인연들에서 그저 만나기만 하면 좋은 이들과,
가을의 끝자락이 머무는 남녘바다 아름다운 섬에 단아하게 솟은 산에서 나를 달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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