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을탐방 - 한국유랑길 (27)
회상이 될 길의 기록
살아가는 날들이 짙어지길 바라며 산다. 무엇인가에 물들어 짙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짙어지고 싶다. 짙어지고 싶어 11시30분쯤, 여든둘 노모를 데리고 정처 없는 길로 나섰다. 그렇게도 살았다 - 탄광문화촌 & 아우라지 (2022.11.12) 비가 온다는 주말이다. 비가 내릴때도 됐다 싶었지만, 못내 아쉬운 하늘이다. 목포로 가 다이아몬드제도 남각으로 떠나는 뱃길에 태워지고 싶었지만, 오후부터 내릴거란 비 때문에 그 바다 그 뱃길 그 섬을 다음으로 미루고 경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정선으로 갈 것이다.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정선으로 들어가고, 정선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동해시로 빠져나와, 동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유값 일십만 원치 여정이다. 엄마는 세상을 서성이다 짙어지고 픈 미..
내편 니편 갈라져, 내편을 잡아 넣을려는 니편을 향해 촛불이 밝혀진 지난 밤, 나는 또 싸울려는 커플의 남자와 술을 마셨다. 심심해서 한동안 싸우질 않는 그들에게 '제발 좀 싸워라!'고 그랬는데, 두 달여 냉전의 심로를 겪은 그들이 또 싸우기 일보 직전의 전야를 만들고 있었다. '안오면 직인다'는 남자의 전언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톡으로 써 여자에게 보냈다. 싸우는 모두를 응원한다. 삶이 심심해 죽겠는데 주위에서 싸워주니 이 얼마나 흥미스런 일인가! 보수와 진보의 치열한 까발리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열전, 서울도 싸우고 부산도 싸운 밤이 지나고 맞이한 일요일 아침, 하늘을 보니 가을이 곧 떠날 듯 싶었다. 천령의 가을 - 지리산 오도재 (2022.10.23) 간다는 가을이 머물고..
그 어떤 관여도 받지 않은 채, 내 가고자 한 길을 따라 홀로 이어간 동해안 해파랑길, 장기곶을 둘러나오면서부터 닿는 항과 포구들은 그 길을 이어갈 이유로 충분했다. 강구, 축산, 후포, 죽변, 묵호, 주문진, 물치, 외옹치, 아야진, 간성, 대진..., 울진읍 연호공원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서니 다시 바닷길이 시작되었고, 그 길의 저 끝, 곶의 지형에 아련한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죽변곶 죽변항이었다. 길은 끝이 났지만, 그 길이 그리워지면 엄마를 데리고 그 항과 그 포구들로 가, 일 없이 서성이다 돌아오곤 했다. 죽변항 역시도..., 죽변곶 해안을 감싸고 모노레일이 놓여졌다고 했다. 통영에서 돌아온 날 오전, 엄마를 데리고 불이나케 죽변으로 갔다. 항의 허름한 식당에서 장치조림에 밥 한 그릇 먹고, ..
시월 두 번째 연휴의 첫 날, 금일도 혹은 생일도를 가고자 11시쯤 집을 나섰지만,100km/hr을 유지해야 할 속도는 가다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닿은 진주서부터 또 정체다. 아무리 그 맛이 진미라도 줄을 서야 한다면 그 맛은 후일로 미루는게 맞다.아무리 그 곳이 가고 싶어도 줄을 서면서까지 갈 이유는 없다. 덜덜 떨면서도 겻불을 쬐지 않는 그런 멍청한 아집은 없지만,난 기다리고 밀리고 하는 그런 정체된 순간속에 있는 게 살면서 제일 싫다. 일 없이 가는 길, 일 있어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곧장 진주로 들어섰다. 황진 장군이 없다 - 진주성 (2022.10.8) 뒤벼리를 지나는데, 남강에 난리가 나있었다.그러고보니 시월이었고, 시월엔 서울시에서도 탐을 낸 남강유등축제가 열리는 달이다. 하늘..
왜 그 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가뿐 숨을 헉헉대며 그 산의 꼭대기에 세 번을 올랐고, 지겨워 디지는 맛으로 그 산의 능선을 두 번이나 걸었지만, 어머니와의 동질성은 없었다. 지리산은 전남·북과 경남의 5개 시·군에 걸쳐진 산이다. 나는 구례 하동 산청의 산맥을 남부권역으로, 함양과 남원의 산맥을 북부권역으로 나눈다. 내가 나눈 두 권역에서, 나는 북부권역에 더 애착이 가고, 그 북부권역에서도 람천과 만수천이 흐르는 그 골짜기들이 가끔식 그리워지기도 한다. 가을이 왔고, 그 골짜기에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을 엄마에게 보여주고자 11시쯤 집을 나섰다. 지리산 냇물 - 람천 & 섬진강 (2021.10.23) 생초나들목을 빠져나와 엄천강을 거슬러 마천으로 가는 길, 산골엔 가을걷이가 한창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