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이 될 길의 기록
골방에는 더 이상 뒤질게 없다 - 여수 본문
다락방은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영이고,
골방은 전라좌수영의 여수다.
다락방은 주구장창 오르내렸지만,
골방은 한동안 문도 열지 않았다.
골방에 가면,
감청빛 바다가 있고,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한 갈치조림을 먹을 수 있다.
골방에는 더 이상 뒤질게 없다 - 여수 (2023.2.25)
당일 왕복 500km 이상을 오가야하는 여정은 이제 늙어서 더는 감당하기가 버겁다.
왕복 500km 그 뒤안길에는 아직도 엄마가 탄 차를 실어야 하는 뱃길들이 남았지만,
팔순을 넘긴 엄마도 그 긴 여정이 힘에 붙힐테고,
운전을 하는 나 역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육짓길 반경 250km 이내에 위치한 선착장에서,
엄마가 탄 차를 실을 수 있는 뱃길들을 찾으니 통영의 두미도와 여수의 몇몇 섬들 뿐이었다.
하지만,
식전 댓바람에 배를 타고 들어가 삼십여분 섬을 돌고나면,
뭍으로 나가는 배편을 반나절 이상 기다려야 하는 두미도와 소리도는 그래서 안가고,
고흥반도 남단 녹동항으로 가 왕복 일곱시간을 뱃길에 떠 있어야 하는 거문도는 또 그래서 못간다.
그로해서 보돌바다 개도만이 만만해졌지만,
아무런 끌림이 없는 섬을 간들 뭐하겠노..., 싶었다.
해도 바뀌었고,
갈 섬도 마땅치 않고,
그래서 개도를 오가는 뱃길에 엄마가 탄 차를 싣고자 11시쯤 집을 나섰다.
보돌바다 동녘에 자리한 개도는 뭍을 오가는 두 뱃길을 가지고 있다.
연도가 된 백야도를 오가는 뱃길과, 가막만을 가로질러 여수를 오가는 뱃길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14시20분이 되면,
백야선착장에서도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도 각각의 철부선들이 개도로 떠난다.
둘 중 하나를 택하노라면,
나중에 둘 다 놓치는 꼴을 당할지라도 우선은 더 좋음만을 지향하게 된다.
입도항과 출도항을 어디로 둘 것인가?
그에 따른 항으로 가는 길은 또 어느 선형으로 할 것인가?
순천 해룡에서 반도를 종단해 백야선착장으로 가는 길...,
광양 옥곡에서 이순신대교를 건너 반도를 횡단해 여수로 들어서는 길...,
여수는 이순신대교를 건너 듦이 맞고,
다시멸과 말린 생선을 산다는 엄마의 장보기 도모를 위해서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이 개도를 오가는 오늘 뱃길의 입도항 됨이 옳다.
시간을 보니 중앙동로터리만 혼잡스럽지 않다면,
엄마가 수산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이에 발권을 하면 될듯 싶었다.
근데...,
이십팔만이 사는 여수는,
주말마다 엄청난 알파가 더해지는 대한민국 5대 아니 3대 관광도시임을 망각했다.
종포해양공원과 이순신광장이 있는 중앙로터리에서 엄마의 장 볼 시간은 증발이 되고,
빠듯해진 시간속 곧장 터미널로 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승선절차를 이뤄야 함이 짜증으로 다가온다.
싫더라~
이 혼잡스러움을 비집고,
그렇게 끌리지도 않는 섬을 가고자 그 지랄 행하기가...,
이 나이에 뭐시 아쉬워 이리갔다 저리갔다 할 마음도 생기지 않더라...,
이미 엄마와 나는,
백야선착장에서 출항도 해봤고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로 입항도 해봤다.
개도!
안갈란다!!
맛있는 갈치조림이나 여유롭게 뭇자!
그게 오늘 여정의 최고치다!!
몇몇 도시들의 저 마다의 식당에서,
1인분 일만오천원을 상회하는 가격으로 각각의 레시피로 조린된 갈치조림들을 섭렵했지만,
특히 여수에서는,
1인분 일만일천원 하는 여수수산시장내 갈치조림을 엄마는 최고라 치부했다.
뱃길을 버리고 갈치조림을 택했다.
그리고 먼저 식당을 나와 남산3교에서 여수 낮바다와 마주했다.
개도로 가는 철부선은 떠났고,
보이는 케이블카는 이미 두 번을 탔고,
인생사 최고의 번뇌는 '이제 어디로 가노!' 였다.
15시40분쯤,
돌산대교와 화태대교를 건너 화태도 서단 묘두로 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갈치조림과 바꾼 개도 뱃길이 못내 아쉬워,
금오도를 오가는 뱃길을 찾아 돌산대교를 건넜다.
15시50분 항차로 입도를 해 17시30분 항차로 출도를 하면 될 듯 싶었는데,
엄마가 '거를 또 마로 가노!'라며 반대를 했기에 할 수 없이 화태대교를 건넜다.
엄마는 차에 앉아 보돌바다 그 감청의 너울을 무심히 보고,
나는 갯가를 서성이며 회상이 된 골방의 기억을 들췄다.
여수...,
여수는 청춘일 때,
여수는 어두워질 때,
여수는 그렇게 찾아듦이 맞다.
흘러간 청춘에 묻힌 여수는,
이제 더는 뒤질게 없어진 골방이었을 뿐이었다.
지배 가자...,!
섬진대교를 건너 하동포구에서 제첩국 팩을 사고,
두구동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니 21시쯤이었다.
엄마는,
일가친척은 고사하고 아는이 하나 없는 여수를 한 열 번도 넘게 다녀왔다.
엄마는,
이제 완쾌를 넘어 회춘을 하고 있다.
일 없이 여수를 한 열 번 정도 왔다갔다 하고나면,
청춘은 다시 오지 않을지언정, 더는 늙어지지 않더라~
골방 벽에 박은 녹슨 못에 걸린 달력은,
아무도 넘기지를 않아서 세월은 하염없이 쉬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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